(구) 덱 시뮬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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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네이버 블로건 R군님의 포스트를 인용한 글입니다.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031513&memberNo=1377&vType=VERTICAL
2부로 이어가겠습니다.

저들에게 넌 단지 명치충일뿐이야!!
나와 같지!! 히히히히하하하하하핳!! 훌륭하군!!
드디어 <냥크나이트>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들게하는 우들러 VS 냥크맨 취조씬입니다. 이 장면은 시퀀스 자체의 임팩트도 대단하지만, 정말 우서가 왜 우들러 자신일 수 밖에 없는지를 최고의 연기로 증면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드디어 붙잡은 우들러,그러나 동시에 사라진 스랄 덴트.그 비밀을 알고있는 우들러에게 진실을 듣기위해 냥크맨을 부릅니다. 초반부터 머리에 살상,그러나 이후 우들러의 대사가 압권입니다. "때릴때 살상부터 하지마,세게세게 받으면 서렌이 뜰테니!"
그러면서 신념의 대립을 펼칩니다. 아마 이때부터 냥크맨은 우들러의 썸뜩함을 제대로 느낍니다. 왜 자기를 죽이려고하냐고 묻자, 언제 내가 널 죽이려고하냐고? 너야말로 나를 완전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합니다.절대악이 성립되기 위해 선은 반드시 필요조건처럼 말이죠. 그러면서 계속 우들러를 취조하는데, 우들러는 냥크맨에게 클린덱처럼 굴지말라고 충고합니다. 지금 당장 선술집은 너의 존재를 인정하겠지만 그래봤자 너를 이용하는 것뿐. 결국 너와 나는 극단적 신념에 미친 괴물일뿐이란 겁니다. 선과 악의 절대적가치를 동일하게 비교할 때 결국 그것은 무의미하고 선술집 하나의 이벤트에 불과할뿐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선술집의 클린덱은 이중적입니다. 냥크맨을 노양심덱으로 지명수배하지만 껄끄러운 덱은 항상 그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 와중에 냥크맨은 과연 무엇을 위해 희생하는가? 자신의 신념? 우들러는 다시 한번 조롱합니다. 그런 가잖은 클린타령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 얼마안가 무너진다. 인간 자체의 본성은 악하고 치졸한 생존본능에 집착할뿐이다, 냥크맨은 명치를 치며 계속 우들러를 협박하지만 오히려 우들러의 설득력은 더욱 커져갑니다. 아마 이 장면에서 많은 분들이 혼란스러워 할 것입니다. 슈퍼히어로무비-단순 정의용사 활약상정도로 생각하고 극장문에 들어섰지만 <냥크나이트>는 그 이상의 생각을 요구합니다. 과연 정의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정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본질적으로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의로울 수 있는가?라는 수많은 질문을 하게됩니다.

또한 이때 우들러는 냥크맨의 폭력을 조롱합니다. 우들러는 정의의 새디즘을 즐기며,악의 마조히즘을 행합니다. 이런 그에게 "미친,괴물"이라고 말하는데, 영화를 잘보시면 알겠지만 우들러는 시종일관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고있다가 가끔 흔들릴때가 있습니다.그때가 언제인줄아시나요? 바로 자기를 "씹서,괴물,미친놈"이라고 부를때죠. 그럴때마다 항상 나는 미치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우들러는 인간의 본성은 결국 나와 같다. 모두가 아닌척, 같잖은 정의감에 놀아날뿐이지.그렇다면 내가 선술집을 극한으로 몰고가 당신들의 거짓을 발가벗게 만들어주겠다며 노양심을 추구합니다. 이 취조씬에서도 전체적으로 냥크맨이 우들러의 명치를 위협하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고 조롱당하는건 냥크맨입니다.우들러가 진정 무서운 것은 파마와 강력함만이 아닙니다.어쩌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조차 나는 아닐것이라고 믿고있는 클린덱의 가치의 불확실한 믿음을 제대로 꼬집기 때문입니다.

렉사르, 다른 직업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길 바래..
또다시 우들러의 계략앞에 결국 냥크맨은 아그라를 잃게 됩니다. 스랄 덴트는 이 사건으로 등급이 방패병으로 내려갑니다. 마지막까지 믿었던 선술집의 희망이 일순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이때 아그라가 죽었던 곳에 멍하니 바라보는 냥크맨이 무척 측은하게 느껴집니다. <냥크나이트>에서는 슈퍼히어로가 보다 인간적으로 다가갑니다. 그들도 완벽할 수없고, 그들도 슬픔을 가지고,좌절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그런것을 인내하고 마지막 모든것을 희생하는 냥크나이트로서의 결심이 나중 큰 감동을 자아내게 만들죠.
이때 아그라가 렉사르에게 편지를 쓰죠. 끝내 자기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솔직히 이번 작품에서 아그라의 행동패턴이 약간 의문이 가지만 마지막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듯, 설사 그녀의 죽음으로 모든 신념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끝까지 버리지 않고 가길 바래라는 아그라의 부탁이 담겨있습니다. 결국 이 멘트는 냥크맨이 아픔을 이겨내고 끝까지 선술집의 냥크나이트로 그 신념을 지켜가길 바라지만, 선술집의 화이트나이트 스랄 덴트는 여기서 무너지게 됩니다. 반어적으로 들리는거죠.이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렸기에. 냥크맨은 아그라의 죽음을 극복하고 신념을 지키고, 스랄은 빌어먹을 세상에 착한 사람되려는 연기는 집어치우고 우들러의 성악설[?]에 굴복해 씹서가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아그라의 죽음이후 바뀌어지는 두 직업의 운명을 뜻하는 상징적 대사였습니다.

등급은 상관없어, 중요한 건 양심이지.
우들러가 황건적들의 돈을 태우면서 하는 대사죠. 이때도 "괴물에게 충성을 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에 스팀 올라가는 표정을 잠깐 짓죠. 어쨌든 이 장면-대사는 알프레도 폴드링이 했던 말을 상기시킵니다. "돌겜 자체를 혼돈으로 만들고싶은 사람에게 등급은 아무의미가 없다" 며 버마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죠.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잡아냤고 할때 "산에 불질렀다"고 하는데 우들러 역시 모든 악당이 혹할수있는 전설등급을 아무런 미련없이 내려버리고 맙니다. 오히려 등급에 탐하는 노양심은 필요없다며 노양심의 각성을 요구할정도입니다. 즉 어차피 모든 덱들은 양심이 없고, 그 본성에 등급이라는 목적을 집어넣으려는 변명은 필요없다는 거죠.

나는 그저 명치를 치는 하수인과 같은 거야..
우들러가 스랄에게 다가가 그를 씹서로 만드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 역시 우들러의 가치관과 사회관을 그대로 드러나죠. 이 모든 돌겜의 잘못과 불행은 클린함이라고. 즉 클린함이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본능을 감추고 연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결과가 뭐냐? 스랄, 당신의 등급은 방패병이 되었고, 아그라는 죽었고. 돌겜은 다시 혼돈으로 되돌아간다. 모든게 계획대로 되면 돌겜은 두렵지 않지만, 그 계획이 틀어질때 사람들은 겁을 먹게되고, 혼돈자체가 공포가 되는거라고 말이죠. 그러면서 스랄에게 제의를 합니다. 즉, 너의 본능을 억제하고있는 그런 클린함에서 벗어나 노양심의 사도가 되라고. 모든것을 잃은 스랄 덴트는 그것을 수락하고 씹랄이 됩니다. 절대선에서 절대악으로 인간의 이중성을 닮은 씹랄 스랄이.
그리고 이 대사중에 어떤 덱을 죽여야 돌겜에 노양심이 오는가하며 1티어덱과 평범한 덱을 비교하죠.이건 우들러가 스랄을 이용하려는 목적이기도합니다. 선술집의 화이트나이트를 나[우들러]같은 악당으로 타락시키면서 선술집을 절망으로 몰아넣으려는 것. 그리고 세상은 혼돈스러워지고 자멸되는것. 그것이 우들러가 노리는 궁극의 목표인 것이죠. 앞에 대사 그대로입니다. "등급은 중요하지 않아,중요한건 양심이지.[선이든 악이든 순수 그 절대적인 인간성의 본질]"

양심을 파는건, 가속도 같은거지..
우들러와 냥크맨의 마지막 대결입니다.솔직히 이전에 너무 대단한 것들을 보여서 싱거운 대결이지만 취조실에서 마저 못 끝냈던 두 캐릭터의 가치관 대립을 종식시킵니다. 결국 <냥크나이트>는 시종일관 우들러의 성악설을 부각시키지만 그래도 유저에게는 아직 "클린"은 남아있다는 냥크맨의 신념을 믿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들러의 성악설로 끝냈음 하는 바람도 있지만, 상업영화라는 틀안에서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BB 감독 모든것을 양보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우들러의 대사처럼 "양심을 파는건 가속도같은 것"이라며 항상 신념을 지킨다 하더라도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라는 경고를 합니다.바로 절대선에서 절대악으로 타락한 씹랄을 통해.

더러운 이 돌겜에서 유일하게 믿을 건 운뿐이야!!
클린도 노양심도 모두가 공평하지!!
BB 감독은 <냥크나이트>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스랄 덴트, 씹랄이라 합니다. 냥크맨을 꿈꾸었지만 모든것을 잃고 결국 광기의 우들러로 타락할 수밖에 없는, 어째보면 우리 인간의 본래적-이중적 모습이라고.
마지막 냥크맨이 그를 설득하지만 통하지 않죠. 그가 이럴수밖에 없는게 이해가 가고 동정이 가지만 잔혹하죠. 동전의 양면같은 얼굴속에 선한 인상의 스랄과, 악으로 일그러진 어그로의 씹랄. 그가 양면의 동전던지기를 유독 믿는것은 이와 같습니다. 우들러가 꿈꾸는 것은 혼돈이라면 씹랄은 모든것을 잃고 낙담하는 나에게 남은 것은 그저 보이지 않는 신의 선택, 운밖에 없다는 허무주의입니다. 렉사르와 냥크맨에게 하소연하는 마지막 장면은 전설을 꿈꾸다 좌절한 방패병의 가장 밑바닥, 그리고 그런 그에게 올바른 해답을 줄수없는 냥크맨의 한계. 우들러에게 시종일관 당하다 돌아온 냥크맨은 씹랄을 바라보며 자신의 무력함을 또 다시 느낍니다.이런 그에게 뻔한 정의타령과 선의지만을 강조할 수있을까? BB 감독은 우들러에게는 어떤 과거와 이유를 묻지 않습니다만, 씹랄에게는 이럴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에 두가지 상반된 관점을 두 캐릭터를 통해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좀 정이 가고 설득력있는건 스랄이죠.우리도 스랄처럼 저렇게 된다면 가잖은 클린과 신념만 믿고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요? 씹랄을 보면 노양심이라기보다는 우들러와 냥크맨의 대결에서 모든 것을 잃은 피해자같은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BB 감독은 씹랄에게 여지를 남깁니다. 마지막 던진 동전의 결과, 냥크맨이 중간에 방해했지만 그가 잿더미에 물드지 않은 앞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우들러가 말하는 성악설과 반대됩니다. 오히려 유저는 태초에 클린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사정으로 악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스랄의 죽음은 그런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선술집에 있어야 마땅할 영웅이지만, 지금 선술집이 필요로 하는 영웅은 아니란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싫어할 거야. 그는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그는 단순한 영웅이 아니야..
그는 파마기사의 처단자이며, 씹랄의 억제자. 냥크나이트니까..!!
2008년 여름 우리를 감동으로 몰아넣었던 그 장면이죠. 그리고 왜 <냥크맨>이라는 인지도 높은 브랜드파워를 포기하면서까지 BB 감독은 모호한 <냥크나이트>를 제목으로 정했을까의 해답! 그리고 모든 비난과 원망을 감수하고 희생하며 선술집의 메시아로, 영웅을 아닌, 아니 영웅을 뛰어 넘은 냥크맨의 진정한 탄생, 바로 그 장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냥크나이트>의 모든 명대사-명장면이 축약되어있기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이야기하죠. 가로쉬는 "고맙소"라고 말하는데, 냥크맨은 "그럴 필요없다"라고 말합니다.아실지 모르겠는데, 이게 <냥크맨 비긴즈>의 마지막 장면대사입니다. 하지만 가로쉬는 "아뇨,꼭 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비긴즈>에서 조금은 모호했던 냥크맨의 진정한 정의를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나는 냥크맨, 조금은 지친 모습에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영화의 명대사를 말합니다.
"나는 영웅도 아니고, 살아있기에 나를 희생양으로 삼아라"-아시다시피 이건 스랄이 말했던 "클린덱으로 죽거나 노양심으로 오래살거나"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냥크맨은 이 대사를 통해 영웅이라는 직책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중요한것은 내가 어떻게되든 선술집의 진정한 평화와 정의입니다. 영화내내 렉사르가 고민한 냥크맨의 의미를 드디어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맨 처음 "너[냥크맨]과 내가 뭐가 그리 다른데?"라며 그 차이를 확실히 구분짓는 해답이기도 하죠.
이 선택으로 인해 냥크맨은 히어로가 아닌 선술집의 냥크나이트가 됩니다. 자신의 모든것을 버리고 말이죠. 지금의 <냥크나이트>가 블록버스터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높은 작품성을 평가받는 이유도 마지막 장면의 임팩트가 가장 큽니다.
Cut 구성도 멋집니다. 우들러-스랄-냥크맨 외에 남겨졌던 조연들의 이후 미래를 이야기하고 정리하는 교차구성은 향후 속편의 암시도 상징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로쉬의 명대사는 스랄 덴트가 체포되기 전 연설과 일맥상통합니다."지금의 선술집 사람들은 깨닫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이후 진정한 평화가 왔을때 우리가 사죄해야할 대상은 우들러가 아닌 냥크맨이다." 자신의 모든것을 던지고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냥크맨을 바라보며 깨닫게 되는 냥크나이트라는 제목의 의미는 보는이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렇게 냥크맨은 고담을 떠나며, 영화는 끝나게 됩니다.
냥크나이트가 말하는 정의는 지금껏 나온 어떤영화보다 가장 무겁고 본질적이면서도 가장 간절하게 정의를 말한다.그렇기에 이 영화가 전형적인 선과 악의 대결,정의가 승리한다는 보편적인 주제이면서도 그 어떤 장르영화나 걸작도 내뿜을 수 없는 주제의식이 돋보이는것이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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